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 얻은 결론이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한 가정이 붕괴돼 파국을 맞는 것보다 비극적인 일은 없거든요.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원리 원칙을 따지는 법의 잣대보다 비참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TV에는 신구 씨가, 의정부에는 제가 있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 탤런트 박용식

탤런트 박용식 씨가 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이혼조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다른 조정위원들보다 이혼조정 성공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비결은 42년간 배우로 살면서 몸에 밴 감정이입과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따뜻한 가슴이다.

탤런트 박용식(63) 씨가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지난 5월 당시 의정부지방법원장이었던 최은수 현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의정부지역의 고등학교 동문 모임 자리에서 가사조정위원 활동을 권유받은 박 씨는 마침 이전부터 봉사활동 기회를 찾고 있던 터라 학교 후배인 최 법원장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대학 시절인 1967년 TBC 공채로 입사했으니 42년 동안 배우로 살아왔죠. 너무 오랫동안 외길을 걸어온 데다 연기란 본래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니 이제 남을 위해 봉사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회용 이벤트식 봉사는 싫었고, 가슴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가사조정위원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어요.”

가정이야말로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긴 박 씨는 그때부터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사조정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적성에 딱 맞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만도 2백 건이 넘는 이혼조정에 참여했고, 매주 두 차례씩 의정부지법을 방문한다.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 얻은 결론이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한 가정이 붕괴돼 파국을 맞는 것보다 비극적인 일은 없거든요.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원리 원칙을 따지는 법의 잣대보다 비참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합니다.”

박 씨는 가사조정위원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은 마음을 열고 속에 쌓아뒀던 이야기를 하염없이 토해내며 눈물을 쏟는다. 특히 얼굴이 알려진 배우라서 법정에 찾아온 사람들이 편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장점도 있다.

“돈 받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그들을 도닥여줘요. 그러면 그들도 굳게 닫았던 마음의 빗장을 열더라고요.”

그는 이혼 사건의 소장도 꼼꼼히 읽는다. 하나같이 기구하고 복잡한 사연뿐이라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이혼소송을 치르다 보면 당사자인 양쪽 모두 굉장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요. 보통 80~90퍼센트가 저보다 연하인데, 요즘은 여든이 넘어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도 많아요.”

박 씨는 가사조정 과정에서 어떤 부부에게든 “구관이 명관이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말하며 재결합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순간적 충동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대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재결합을 한다. 하지만 상처가 곪을 대로 곪은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권유가 통하지 않는데, 그럴 때는 ‘지혜롭게 교통정리를 하는’ 역을 맡을 수밖에 없단다.

박 씨의 가사조정 경험에 따르면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문제로 생기는 갈등이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했더라도 극심한 생활고에 빠지면 이혼을 선택하는 부부가 적지 않다는 것.

“그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혼사유는 성격 차이고, 세 번째가 남자의 폭행이나 음주, 폭언 같은 것인데 이 역시도 생활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고부 갈등이나 배우자의 외도 때문에 헤어지는 부부도 적지 않죠.”

박 씨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타인의 문제를 받아들이돼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인생선배로 다가가 대화… 화해하고 돌아가면 보람 느껴”

탤런트 박용식 씨는 의정부지방법원의 가사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의 재결합을 독려하고 있다.

“가사조정이 있는 날 딱 둘을 앉혀놓고 한 10분 이야기해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감이 와요. 심리전을 파악해야 하죠. 제가 수사관 같기도 해요. 고도의 심리 테스트에서 진실과 허위를 가리는 작업 말입니다. 이때는 언변과 설득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요. 꾸짖는 자리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대화가 우선입니다.”

그가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파국 직전의 부부가 화해하고 좋은 모습으로 법원을 나설 때다. 그때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결혼식 주례도 자주 맡는 박 씨는 부부의 화목이 곧 자식 농사와 연결되며 세상에서 가장 중차대한 일이라고 믿는다.

“저도 37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는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가정과 자식 농사더란 말입니다. 이혼은 부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니까요. 잘 클 수 있는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잘못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부모 책임이에요. 아이들에게 부모가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교육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박 씨는 1남 2녀의 아버지다. 그리고 항상 그의 기를 살려주는 한 여자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가 5, 6공화국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활동이 금지되고 연기활동에 좌절을 겪을 때도 가족은 늘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었다. 그것은 방송 출연 제의가 뜸해진 요즘도 마찬가지다.

“원로 연기자가 되면 방송 출연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 줄 알았는데 ‘급격히’ 줄더군요. 그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어려운 게,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계속 선택받아야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캐스팅 여부도 출연 직전에 뒤바뀌는 일이 허다하고요. 연예계의 허와 실을 모두 경험해서 자식들에게는 제때 월급 받고 정년이 보장되는 인생을 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박 씨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금기시한 연예계 일을 하고 있다. 큰아들은 영화기획사의 투자제작팀장이고, 둘째는 KBS 공채 31기 출신의 프리랜서 성우로 활동 중이다. 셋째 또한 중앙대 영화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더욱이 박 씨의 부인까지 자녀들 편에 섰다.

“아내는 당신도 어릴 때 부모가 말렸던 것을 했으면서 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며 다그치곤 해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고 독려하죠. 저는 보수적인데, 아내가 심하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이에요. 그게 그 사람의 매력이고요(웃음).”

박 씨는 힘겹게 연기활동을 하면서도 지금껏 긍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가족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가사조정에 임할 때마다 타인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슴에 새긴다. 또 가사조정을 하며 온몸으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연기로 승화시킬 생각이다. 글·사진:위클리공감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newsgumi.kr/news/view.php?idx=110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케미 오코노미야끼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