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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기어이 봄이 오고 말았다.
남녘으로부터 올라오는 봄꽃소식은 여느 해 다를 바 없지만 살림살이를 흔들고
지나가는 봄바람은 끝없이 매섭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오기는 했지만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이 말은 전한(前漢)의 원조(元祖) 때 서북방 흉노족의 원나라로 끌려가
는 절세미인 궁녀‘왕소군(王昭君)’을 소재로 하는‘동방규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
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했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자라지 않는다는데, 봄이 와도봄 같지 않다”고 했다. 까짓 매화 몇 송이
피어봐야, 산 속의 생강나무, 산수유꽃 노랗게 무더기로 터져봐야 다 지나가는 한철
봄의 전령일 터이지. 기다린다거나 보낸다는 기대나 기쁨은 호사스럽게 계절을 즐기
는 감상이다.

그 감상을 즐기기엔 우리 주변에 흐르는 세상의 바람이 너무 매섭고 차다.
낮게 춤추는 주식 그래프, 웅크리고바닥에서 일어설 줄 모르는 부동산의 부동
자세, 일자리를 나눠 가져야 여럿이 살 수 있다고 외치는 비정규직 고용기한 연장,
대학 졸업하고도 일자리 없어‘취업 아닌취집’한다는 신문활자 ……. 불안하고 우
울한 이야기들이 봄 꽃 속에서 피고 또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어렵고 시끄러움 속에서도 세상의 만물은 제자리에서 여상스럽게 제 역할과
제 모습으로 피고 시든다. 야외로 나가 보았다. 온통 어렵고 힘들 다고 하는 뉴스와
신문활자로부터 벗어나서 겨울의 잔설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보기 위해서다.
응달진 산 밑 버들가지도 어김없이 눈을 부릅뜨고 금방이라도 터질듯 부풀어 있다.

밭 뚝 길섶이나 담벼락 밑에는 쑥부쟁이, 냉이, 꽃다지, 고들빼기 등 들나물들이 빼곡히
고개 쳐들어 올라오고 있었다. 음지 산의 잔설도 거의 녹아 그 심한 가뭄 속에서도
도랑물이 되어 흐른다.

세상의 흔들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제 역할과 자리를 지키는, 실로 무서운 자연의
힘이다. 사람 또한 그러하리라. 시간이 지나면 아픈 상처도 아물어 새살이 돋고 딱지가
앉으리. 거칠고 고단하게 단련된 육신이 당당하게 세상풍파를 견디듯이 한 번쯤 삶
속에서 어려운 질곡을 극복하는 것도 인생의 한 과정이리라.

잃고 깨어지고 고단한 시간들도 때가 되면 흐르고 지나가리라.
서양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신이‘헝그리정신’이라 한다. 상대적
으로 어려울 때 다른 나라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에너지가 한국인에게서 발휘
된다고 했다. 자기희생을 무릅쓴 공존공생의 유교정신, 심층에 잠재하고 있는 위기극
복의 끈기,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등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여 이 어려운 총체
적 난국을 헤쳐 나가는 활력소가 되리라.

겨울의 잔설이 녹아 사라지듯이 곧 봄도 지나가리라. 어려움 속에 핀 꽃들도 화
사하게 보이던 제 자태를 버리고 잎으로 무성하리라. 그리고 그 꽃 진 자리에 저마
다 열매를 맺고 과육을 키우리라. 그리고 세상은 또 풍요와 평온 속에서 나누며 웃
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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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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