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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지지 않는 대한민국 과학 1번지 대덕특구

[과학의 날 특집-과학을 살리자] 신기술 産苦는 계속된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리고 미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결국 과학기술이다.
우리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과학 한국’을 대표하는 대덕특구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곳엔 ‘과학 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대덕특구 심장부에 자리한 KAIST

경부고속도로에서 회덕분기점을 지나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들면 곧바로 대덕밸리IC가 나타난다. 이곳 IC를 빠져나가자마자 국내 최대 규모 연구단지인 대덕연구개발특구가 펼쳐진다. 7천만 제곱미터 부지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6개 대학, 32개 정부연구기관, 4백19개 민간 연구소가 집적해 있다. 이곳 연구단지에서 일하는 연구원은 약 2만명. 생산직과 관리직 인력도 2만1천여 명에 달한다.

대덕특구의 영어 명칭은 ‘대덕 이노폴리스(Daedok Innopolis)’, 즉 ‘기술혁신도시’란 뜻이다. ‘대덕 이노폴리스’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한국 1호 우주인’ 이소연 박사의 모교인 KAIST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은 과학도들의 산실인 KAIST는 대전시 유성구 과학로 335번지의 1백15만4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캠퍼스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7천7백여 명의 학부생과 석·박사들이 과학 한국의 꿈을 키우고 있다.

곳곳에 전기자동차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이색적인 캠퍼스 중앙에는 한국 역사의 대표적인 과학인인 장영실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캠퍼스 안에는 KAIST 연구센터 46곳, 일반연구센터 71곳이 있어 밤에도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원들 때문에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KAIST 홍보팀 봉원길 의전담당관은 “보통 대학기숙사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있지만 이곳 기숙사는 24시간 개방돼 언제든지 출입카드를 이용해 드나들 수 있다”며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KAIST가 한국 과학계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지난해까지 6천8백여 명의 박사를 비롯해 약 3만4천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2007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KAIST는 국내 대학 가운데 국내외 특허등록 건수 1위다.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연구 성과도 수두룩하다. 이곳 인공위성연구센터의 한국 최초 과학기술위성 발사(2003년),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교수팀의 슈퍼대장균 개발(2004년),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팀의 세계 최고 수준 인간형 로봇 휴보(HUBO) 제작(2004년), 화학과 이효철 교수팀의 분자캠코더 개발(2005년), 생명과학과 정종경 교수팀의 파킨슨씨병 발병 원인 세계 최초 규명(2006년), 전기·전자공학과 최양규 규수팀의 세계 최소 테라급 플래시메모리 개발(2007년), ‘국가과학자’인 화학과 유룡 교수의 나노주형합성법 창안(2007년) 등이 그것이다.

KAIST가 2007년 대덕특구 내 정보교류 및 네트워크 중개업체 ‘대덕넷’에 의뢰해 KAIST 졸업생 채용기업과 기관 2백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졸업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KAIST 졸업생 채용’에 대해 응답 기업의 91.3퍼센트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특히 ‘리더로서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90.4퍼센트가 ‘높다’고 평가했다.

KAIST는 1971년 서울 홍릉에 설립된 한국과학원이 모태이며, 1981년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통합,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탄생했다.

미래 경쟁력의 산실 대덕특구


2007년 우리 기술로 만든 핵융합 실험로 K-STAR 내부.
처음 ‘대덕연구단지’라는 이름으로 대덕에 연구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로, 중공업 육성을 위한 투자로 이뤄졌다. 표준과학연구소를 비롯해 연구소 단지가 입주한 것이 1978년부터이며 1983년 대전시로 편입됐다. 대덕을 품에 안은 대전은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로 ‘과학도시’로서 이름을 떨치게 됐다.

2005년에는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돼 대덕연구단지, 대덕테크노밸리, 대덕산업단지, 북부 그린벨트지역, 국방과학연구소 일원 등을 특구로 지정하면서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가 만들어졌다.

연구단지 조성 이후 30조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이 투자돼 투자 예산의 1백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덕특구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세계 최초, 한국 최고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전시 유성구 어은동의 국가핵융합연구소에는 지름 10미터, 높이 6미터, 무게 1백 톤의 도넛 모양 핵융합 실험로 ‘K-STAR’가 있다. 2007년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의 태양’ K-STAR는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핵융합 연구장치로 2008년 6월 플라즈마 발생에 성공,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성구 대학로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는 1초에 1조 회의 연산이 가능한 슈퍼컴퓨터가 가동되고 있으며,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는 세계 최초로 물질의 원자 구조를 3차원으로 살필 수 있는 현미경인 높이 14.5미터, 무게 3백40톤의 초고전압 투과전자현미경 (HVEM·High Voltage Electron Microscope)이 있다. 국내 최초, 세계에서 4번째 개발된 심해 무인잠수정 ‘해미래’호를 볼 수 있는 곳도 대덕특구의 한국해양연구원이다.

이렇게 대덕특구에서는 대단한 기술들이 탄생했고, 이 기술들은 그동안 대한민국에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삼성전자가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D램 시제품을 만들면서 ‘반도체 강국 코리아’의 신화에 돛을 올린 것도 대덕특구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기술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도 역시 ETRI의 디지털 이동통신시스템(CDMA·부호분할다중접속)기술 상용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술평가 전문기관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을 정보통신(IT)강국에 오르게 한 CDMA 기술의 경제 효과는 66조36억원이며, 이는 CDMA 투자비의 3백배에 이르는 액수다. 1976년 설립된 국내 최대 전자정보통신 연구기관인 ETRI가 개발한 전체 기술의 경제효과는 1백4조5천7백25억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벤처의 요람 대덕특구


대덕특구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마련된 해양플랜트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대덕특구는 벤처기업의 요람이기도 하다. 대덕에서 벤처기업이 활성화된 계기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당시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R&D 투자부터 줄이기 시작했고, 연구소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무렵 정부 연구소의 관료적 분위기 대신 자유로운 창업을 희망하는 연구원들까지 이 대열에 합세, 벤처 창업이 봇물을 이뤘다.

이곳에서 벤처 창업이 급증한 데에는 정부출연 연구소의 경우 연구원이 자신이 참여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별도의 창업을 할 때 정부 보유 기술 사용에 따른 사용료를 면제하는 대신 성공 후 신기술연구기금 출연을 의무화한 제도의 효과도 있었다. 바야흐로 ‘박사 사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덕특구 지정 후에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출자해 조성한 대덕특구펀드 8백억원이 벤처 창업에 힘을 실어주었다. 대덕특구펀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개 기업에 3백62억여 원을 투자했다.

(사)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벤처기업 수는 3백30여 개, 이 가운데 대덕특구에 기반을 둔 벤처회사는 약 2백90개다.

이 협회 이인구 사무국장은 “대덕의 벤처기업들은 업종의 다양성, 독창성이 특징”이라며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은 물론 항공, 부품, 소재, 환경 등 없는 업종이 없다”고 전했다.

이곳 벤처기업 가운데 도담시스템스는 산업·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무인비행기 개발로 유명하다. 반도체 전문벤처인 실리콘웍스와 국내 최대 스크린골프업체인 골프존은 지난해 매출이 1천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대덕특구가 높은 인지도, 정부의 융자, 고급 연구인력 공급 등 벤처 창업에 장점이 있는 반면 나름대로 어려움도 있다. KAIST를 비롯해 인근 대학에 우수한 인재들이 넘치지만, 이들이 안정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선호해 벤처기업 입사를 꺼리고, 어쩌다 오더라도 경력이 쌓이면 여건이 좋은 기업으로 떠나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위기 상황도 벤처기업들에게는 ‘설상가상’이다. 과거 외환위기 때와 달리 기업이나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R&D 투자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리는 추세지만, 벤처기업들은 소비는 위축된 데다 금융권의 담보 요건이 강화되는 바람에 자금줄이 막혀 어렵다는 것이다.

이인구 사무국장은 “벤처기업의 경제적 어려움 해결을 위해 ‘기술 담보’를 금융권에서 인정해 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벤처기업이 보유한 기술의 타당성, 시장성, 성장성 등을 평가해 지원해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과학기술인의 위상 높이는 정책 지원 필요


KAIST 유회준 교수가 만든 초고속 인지칩을 탑재한 세계에서 가장 ‘눈치’ 빠른 로봇. 약 20cm 높이의 이 로봇은 인간을 모방하여 0.02초만에 반응한다.
대덕특구에 있는 연구원 가운데 박사학위 소지자는 약 7천 명이다. 우리나라 박사학위 소지자의 10퍼센트 가량이 대덕특구에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이곳의 우스갯소리는 “대덕에서 돌을 던지면 열 개 중 두세 개는 박사 머리에 맞는다” “대덕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석·박사”라는 말이다.

보통 회사원들은 아침이면 사무실에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일과를 보내지만 이곳 대덕특구에서는 많은 연구원들이 밤샘 연구도 밥 먹듯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연구원으로서의 수명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 숫자가 늘어난 여성과학자들은 연구에 육아 부담까지 더해 남성보다 더욱 어려운 처지다. 1989년부터 대덕 한국기술자원연구소에서 근무해온 맹정은(43·대전 송강동) 씨는 2002년 둘째아이를 출산한 뒤 육아 문제로 사직했다. 그의 동갑내기 남편은 지금도 한국원자력연구소에 근무한다.

맹 씨는 “남성들도 항상 연구에 쫓겨 개인 시간을 갖기 어렵지만 여성 연구원들은 출산과 육아를 병행해야 해 더욱 어렵다”며 “다행히 최근 대덕에 야간보육시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과도한 실적주의도 과학기술인들의 고민이다. 연구기관 안팎에서 단기적 성과나 눈에 드러나는 실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내 과학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논문 편수로 과학자를 평가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세계적인 과학 저널에 논문을 발표해야 ‘좋은 과학자’로 보는 풍토도 문제다. 최근 한국의 몇몇 과학자들이 조작된 논문을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게재해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일도 이러한 풍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과학자들은 결코 “다작(多作)이 수작(秀作)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보다는 국제회의에서의 활동상이나 업적, 논문의 피인용 횟수, 논문이 개재된 저널이 과연 ‘퀄리티’가 있는 저널인지 등이 더욱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최근의 이공계 기피 현상, 기술인력 경시풍조 속에서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은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의 업무 중 중요한 부분이 복지다. 특구지원본부 인원 1백13명 가운데 89명이 골프장, 스포츠센터, 수영장 등 복지센터 근무자다.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강계두 이사장은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 등으로 대덕특구 내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도 많이 저하되어 있다”며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노력한 만큼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우리 본부는 그런 분위기가 대덕에서 시작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덕넷의 이석봉 대표는 “대덕 연구원들의 고민 중 하나는 연구 성과에 비해 주변의 평가가 인색하다는 점”이라며 “대덕은 원자력 발전, 휴대전화 등 분야에서 국가가 투자한 만큼 충분한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과학기술 인력을 돈만 투자하면 연구 결과를 쏟아내는 자판기쯤으로 생각하는 인식에 막히고 스스로 홍보 활동도 못해 한국을 대표할 인적 자원들이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말했다.

< 위클리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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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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