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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후 그 규모에 있어서 가장 장대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선진국과 신흥시장국 모두에게 글로벌화된 금융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금융위기는 개도국의 문제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혁신적 금융상품의 도입과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이른바 그림자 금융시스템이 결합하여 초래된 위기는 기존의 '자유로운 시장에 대한 믿음'의 패러다임이 거센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요컨대, 효율시장가설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효율시장가설은 주가, 금리, 환율 등 금융시장의 가격이 모든 유용한 정보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즉, 시장가격이 최적자원배분을 수행한다는 시장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깨어진 ‘효율시장가설’

글로벌 금융위기는 비주류 경제학의 범주로 인식되었던 H. 민스키의 금융불안정가설에 새로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금융불안정가설은 금융시장이 내생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금융중개활동을 통해 이윤을 수취하는 은행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자금의 조달과 운용에 혁신적 활동을 꾀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금융의 취약성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다수 신흥시장국은 선진국으로부터 자본회수가 일어나 비록 글로벌위기에 직접 노출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역류(디레버리지)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 특히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자본자유화가 상당히 진전되고 모범적인 금융인프라를 갖춘 한국의 경우 안정적인 펀더멘털에도 불구하고 대외적 충격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경제교과서 이론과 달리 실제로 신흥시장국의 자본자유화가 과연 성장을 촉진하였는지에 여부에 대한 명쾌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자본자유화에 따른 부작용이 제기되고 있다.

즉, 해외자본흐름은 강한 경기순응성을 가지고 있으며 호황에서 신흥시장국에 대한 과다한 자본유입이 과잉유동성에 따른 자산시장의 붐을 조성한다. 그 결과 거시경제 불균형을 심화하고 경제가 대내외 충격에 매우 취약하게 되는 이른바 ‘자본유입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득’ 될 수도 ‘독’ 될 수도 있는 외국자본유입

실제로 충격이 발생할 때 해외로부터의 자본유입이 중지 또는 디레버리지가 일어나 반대의 사이클이 작동한다. 외환부문에서의 디레버리지는 국내외 금융시장의 연계성이 높고 자국통화의 레버리지도 마찬가지로 높을 때 국내신용시장에서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현상(double drain)이 일어난다. 이 점을 볼 때 적어도 신흥시장국에서는 효율시장가설보다 금융불안정가설이 더 맞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자본유입이 증가할 때 유입된 자금의 단기화 즉 단기외채가 늘어나 만기불일치의 위험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대외채무가 대외채권보다 더 크게 증가함으로써 통화불일치의 위험이 함께 증가한다.

선진국과 달리 신흥시장국의 통화는 국제통화와 교환성이 없기 때문에 두 불일치의 위험은 자칫 외채상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유입의 문제를 극복하고 자본자유화의 혜택을 크게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이 글로벌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우선 금융기업은 비록 개별 금융기업차원에서는 합리적 행동이 다른 금융기업 모두가 같은 행태를 보일 때 부정적인 외부효과 즉 구성의 오류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대처하는 것이다.

신뢰 회복·외환보유액 확충 등 대응책 마련 필요

연구에 따르면 단기외채가 증가하거나 환율불안 시 금융기업의 해외차입 금리수준을 결정하는 CDS 프리미엄은 채무불이행 또는 외환위기를 경험했던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크게 상승하는 낙인효과(stigma effect)가 존재한다. 신뢰상실에 따른 시장의 형벌이 오래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신흥시장국 보유외환이 증가 추세를 보인 것은 금융글로벌화에 따라 크게 높아진 단기자본흐름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완충장치로서의 기능이 강화된 것을 반영한다.

다시 말하자면 보유외환이 민간부문의 자본거래에서 발생한 두 불일치 위험에 대한 보험준비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외환보유액이 과다하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충분한 보험금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만약 통화당국이 외환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면 민간부문은 위험에 대한 고려없이 수익을 최대화하는 수준에서 외화를 조달하려 할 동기를 가지게 되고 이 때 더욱 심각한 자본유입의 문제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유외환을 빌미로 발생하는 모럴해저드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

통화 국제화도 고려해볼만한

경기순응성을 개선하는 경기역행적 정책수단 즉 거시건전성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유용한 대안이다. 거시건전성규제는 경제주체의 이질성을 유도함으로써 구성의 오류가 미치는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제어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개별 금융기업의 건전성에 초점을 맞춘 미시건전성 규제와 차이가 있다.

경기순응성이 미약하거나 오히려 역행적 성격을 가지는 해외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할 수 있도록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자본자유화의 이점을 높이는 방향으로 해외자본의 구성을 바꾸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민간부문의 외환거래에 따른 통화불일치의 위험이 국민경제의 리스크로 전가되지 않도록 통화국제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태지역에서 통화국제화가 가장 많이 진전된 오스트레일리아는 순채무국임에도 불구하고 외채를 자국 통화로 헤징함으로써 오히려 외환에 대해서는 채무보다는 채권이 더 많다.

통화국제화는 단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며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돈독한 신뢰를 쌓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금융기업의 신용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야 하며 통화국제화에 따른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 금융인프라의 선진화, 금융시장의 높은 심도,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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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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