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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상제 술내기에서 얻는 건강 교훈 - 김원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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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걸쳐 활약한 중국문학가 포승령에 의해 쓰여진 <요재지이(聊齋志異)> 란 책은 이른바 중국판 전설의 고향으로도 불리는 중국 괴기문학의 걸작입니다.

이 책에는 자신보다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자들은 보란 듯이 과거에 합격하는데 정작 자신은 늙도록 급제하지 못하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만 한 선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비가 답답한 나머지 옥황상제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묻자 옥황상제는 갑자기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옆으로 불러 술내기를 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선비에게 말하기를 만일 정의의 신이 술을 더 많이 마시면 선비의 따짐이 옳은 것이지만, 운명의 신이 많이 마실 경우에는 세상사가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선비가 체념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습니다.

이윽고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결과, 정의의 신이 석 잔의 술밖에 마시지 못한 반면에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의 술을 비우게 됩니다. 이에 옥황상제는 선비에게 이르기를 <보라, 세상사는 반드시 정의에 의해 움직이지는 것은 아니다. <br/>
지금 보았듯이 오히려 운명의 힘이 더 크다. 너도 그 점을 수긍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의의 신이 적어도 석 잔의 술을 마셨다는 그 의미를 잘 새겨 반드시 운수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주기 바란다.> 하고 선비를 나무라며 돌려보냅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오늘날 흔히 인구에 회자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어원이 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호사가들은 지금도 많은 술자리에서 과연 이 고사가 가르치는 운칠기삼이 옳으냐 아니면 노력 또는 능력을 보다 더 강조하는 기칠운삼(技七運三)이 인생의 정답이냐 하는 해답이 있을 수 없는 끝없는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건강과 장수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고조되면서, 국내외의 장수자에 대한 기사들이 종종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흔한 내용이 이른바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장수자들의 거주지 환경에서부터 개인 활동 방식, 식습관 까지 다양한 원인들이 분석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들 기사들은 거의 대부분에서 장수자들은 무언가 남들과 다른 특별한 건강 관리법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 조건하에 그들의 모든 생활 방식을 장수와 연결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어떤 장수자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은 경우는 역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소개되고, 만약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적당히 마시는 술이 장수의 비결로 해석됩니다.

또 담배까지 피우는 경우에는 세세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 편안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으로 설명되기 까지 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소식하는 장수자는 바로 그것이 장수의 비결이 되며, 고령임에도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분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가리지 않는 식습관이 중요한 요인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이른바 건강, 장수의 특별한 비결들이 있는 것일까요? 또 만일 있다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비결을 충실히 따르면 모두 장수와 건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거의 매일이다시피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은 운동과는 담을 싸다시피 하는 사람들에 비해 모두 장수하는 것일까요 ?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구태여 복잡한 설명 없이도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들의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들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그렇습니다. 비단 세상사에서 뿐만 아니라 장수와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 기본적인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운명의 신인 것입니다. 이 운명의 신이 보다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외투를 입고 등장한 것이 바로 유전이라는 이름입니다.

이른바 장수가계의 존재, 불규칙한 생활습관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분들의 존재, 운동으로 땀을 흘린 적이 없어도 정신적 여유만으로도 건강 장수하는 분들의 존재가 바로 유전의 힘이며 그 실체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성급한 분들은 벌써 <맞아!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어. 새삼스럽게 건강을 위한 노력이 무슨 소용이야> 라는 실망감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다만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점들이 위에서 설명 드린 명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운명으로 표현되던 유전으로 표현되던 우리가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실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운칠기삼의 고사에서 옥황상제의 가르침과 같이 우리 모두는 30%라는 정의(노력)의 영역을 선사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일부 호사가들의 주장대로 만일 운삼기칠의 비율이 맞는다면 이는 무려 70%나 되는 영역이 됩니다.

이 영역은 비단 그 자체의 산술적인 의미를 떠나 한 사람의 전체 삶의 흐름을 완전히 변화시킬 만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A는 운명(유전)의 측면에서 70점 만점 중 65점이라는 라는 높은 점수를 미리 타고 난데 비해 B는 55점 밖에 타고 나지 못하였습다.

그러나 A는 타고난 혜택에도 불구하고 노력 영역의 점수에서 30점 만점 중 10점 밖에 얻지 못한 반면 B는 25점을 획득했다고 합시다. 결과적으로 A는 75점의 건강장수 성적을 보인 반면 B는 80점을 보여 더 좋은 결과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유전이 차지하는 70점의 점수 중 일정 점수는 노력의 점수와 연계되게끔 되어있기 때문에 설사 높은 선천적 점수를 타고난 경우에도 적절한 관리가 수반되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감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흔히 <방아쇠 이론>으로도 설명되는 유명한 이론으로 예를 들면 A가 받고 태어난 70점의 점수 중에는 후천적인 노력 관리와 관계없이도 반드시 취득하게 되는 소위 기본 점수가 있는 반면에,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그 점수를 취소한다는 조건부 점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A의 경우 이런 측면에서 노력의 낮은 점수 때문에 단지 75점에 그치지 않고 10점을 유전 점수에서 더 감점되어 60점으로 끝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의학 지식으로는 각 개인의 유전적 바탕을 완벽하게 파악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물론 생명과학의 발전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되면 어느 날에는 가능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어느 정도 자신의 유전적 체질을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가족력을 통한 추측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일 어떤 특정한 사람이 부계, 모계 양쪽으로 모두 건강 장수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특별한 유전적 변이가 없는 한 그 또한 장수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또 부계, 모계 양쪽으로 많은 분들이 음주로 인한 병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면 그 또한 술로 인한 병에 걸릴 확률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술을 각별히 조심하여야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추정 또한 어떻게 보면 일반론일 뿐이지 한 사람의 생명과 운명을 두고 그 확률을 장담할 수 있는 정도는 결코 되지 못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정작 중요한 점은 누가 어떤 유전적 소인을 타고 났느냐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유전의 힘은 엄연한 실체로 존재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후천적 삶의 노력이 중요하며 많은 경우 그러한 노력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료: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소식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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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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