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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60년, 베를린 장벽붕괴 20년 - (기고) 오준근 경희대 법대 교수·KP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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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당시의 독일인과 오늘의 독일인

독일 통일이 되던 1990년에 필자는 베를린 장벽 붕괴의 순간을 독일인들과 같이 체험했고 통일의 기쁨을 그들과 함께 누렸다. 당시의 독일인들은 통일을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편 엄청난 통일 비용, 40년간의 인적, 사회적, 문화적 단절로 인한 소통의 부재, 비밀경찰 등 각종 범법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처리, 자본주의 교육을 받지 않은 청년 세대들을 경제 활동 구성원으로 편입시켜야 하는 문제 등을 걱정했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독일 사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통일이 주는 부작용을 걱정하며 남북통일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독일인들은 통일 독일이 주는 장점을 생각하면 지난 20년간의 고통은 ‘당연히 감당할 수 있는’ 기꺼운 고통이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정도로 자부심에 차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통일국가의 장점은 정말 많았다.

독일 통일이 독일 사회에 준 이득

1) 평화의 획득과 증진

통일이 독일 사회에 가져다 준 가장 큰 이득에 대해 독일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평화’를 말한다. 사사건건 빚어졌던 대립과 정치 사회적 힘의 소모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점은 어떠한 경제적 비용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이익이었다고 그들은 강조하였다.

독일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통일을 통하여 평화를 얻었고, 분단으로 인해 산적했던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견고한 평화를 누리고 있다. 평화의 획득과 그 증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두렵지 않다”.

2) 내실 있는 국제 경쟁력의 증진

통일의 이익으로서 독일인들은 “내실 있는 국제경쟁력의 증진”을 꼽는다. 통일 전 서독은 서유럽의 경제 강국이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막대한 비용을 구동독 지역에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독일이 서유럽의 경제빈국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하곤 하였다.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독일은 외부로 눈을 돌릴 여유 없이 엄청난 국력을 ‘실질적 통일’을 위하여 쏟아 부었다.

구동독의 도로, 철도, 공항 등 낙후된 사회 기반시설의 정비, 경쟁력을 잃은 국영기업의 청산, 분단 및 탈 동독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분단 재산의 처리, 가치를 잃은 구동독 예금과 현금자산을 유로로 지급하는 일, 기금을 납부하지 아니한 채 급부대상에 편입된 연금수급자에 대한 연급지급과 의료보험 혜택의 부여 등은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육, 행정, 법원, 검찰, 경찰 등 거의 모든 영역의 사회적 시스템을 새로이 건설하는 데도 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었다. 많은 불만들이 터져 나왔지만 독일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대다수 국민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독일인들은 구동독 지역에 쏟아 부은 비용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동베를린 지역이 서베를린에 비하여 서울의 강남과 강북의 편차를 상회할 만큼 훨씬 번화한 거리가 되었다. 서독 기업들에게 동독은 지난 20년간 엄청난 투자의 기회를 제공했고, 통일독일은 훨씬 더 내실 있는 국제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투자유치 현장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은 외국인 투자에 있어 오지 중의 오지”라고 말한다. 분단국가에 장기적이고 투자성 있는 외국자금을 끌어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이제 글로벌기업들이 되었다. 한국 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에 직접 투자를 많이 하지만 대상국들의 경제성장과 투자정책의 변화 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북한 간에 자유로운 왕래와 투자 및 자금의 자유로운 진출입만 가능하다면 북한의 낙후된 사회기반시설과 학교, 기업 등은 우리에게 새로운 투자처요, 보람 있는 새 일터가 될 것이다. 통일된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골든 트라이앵글’로서 가장 중요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

독일인들은 말한다. “통일 후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우리는 새로운 투자처를 얻었고, 새로운 영토와 1,700여만 명의 새로운 인력자원을 얻었다. 그 결과 국토는 약 44%, 인구는 약 27%가 증가하여, 보다 내실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통일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20년 전 통일 당시에 ‘경쟁력’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동독인들을 어떻게 서독인들과 조화롭게 융합시킬 수 있을까하는 회의가 많았다. 통일 초기에 동독 출신들은 오씨(Ossi)라 불렸는데 서독 출신인 베씨(Wessi)들과 비교하여 비하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었다.

독일인들이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한 원동력 중 하나는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 제도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제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충분한 배려를 하는 체제다.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연금, 의료, 고용, 노인요양 등의 사회보험이 그 기반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 중의 하나는 교육제도다. 유치원부터 대학 및 직업교육에 이르는 전 과정이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학비는 거의 모두를 정부가 부담한다. 교육제도는 기본적으로 ‘꼴찌’를 위한 교육이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은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된다. 제빵, 마사지, 허브 차의 제조, 기계조립 등 매우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교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이들의 수는 전 국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독일사회의 기틀이다.

보수나 사회적 처우 면에서 대학출신과 차별이 없다. 직업을 바꾸려면 실업급여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새로운 기술을 준비한다. 대학은 30% 정도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만 진학한다. 대학에는 ‘학문적’ 성격을 가진 학과만이 개설되어 있고, ‘좋은 대학’이 아닌 ‘적응이 편한 대학’의 ‘마음에 드는’ 학과에 간다. 진학을 위한 과외 열풍은 없다.

꼴찌를 위한 풍부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는 오씨들, 즉 동독인들이 큰 문제없이 통일된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평화와 통일을 다시 소리 높여 합창하자

우리나라는 경제위기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한 시대와 국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경제적 풍요는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경제’에만 집중할 경우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독일 통일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볼 때, 우리는 ‘통일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남북관계에서 보다 공고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활발히, 또 진지하게 정책을 수립하며 검증하고 있는가?

온 국민의 염원과 지혜를 모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래를 다시 소리 높여 합창하여야 할 때이다.

자료: 오준근 경희대 법대 교수·KP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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