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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방황할때 어머니가 털어주신 이슬
[만남]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소설가 이순원 모친

예술가의 어머니에겐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선천적인 재능에 후천적인 노력과 경험이 결합될 때 비로소 훌륭한 예술가가 탄생하는 것이라면, 그 원천엔 바로 어머니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어버이의 날’을 앞두고 분야별로 예술가의 어머니 한 명씩을 선정해 시상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올해 선정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소설가 이순원의 어머니 김남숙 씨다.

‘2009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이 열린 지난 4일, 소설가 이순원과 그의 어머니 김남숙 씨를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강릉에서 오랜만에 올라오신 어머니 ‘비싼 밥’ 드시게 한다고 딸과 사위가 마련했다는 이 자리에선 소설가 이순원도 그저 오남매 중 ‘셋째’일 따름이다.
신라호텔에서 만난 두 모자(母子)는 굳이 소개를 안 해도 모자지간임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눈매며 입매가 꼭 닮아있었다.
“내가 잘 해서 탔나. 다 셋째 지가 잘하고, 며느리가 내조를 잘 해서 탄 거지”.
수상 소감부터 묻자 김 씨는 며느리에게 공을 돌리며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다. 가정이 화목하고, 집안이 평안해야 좋은 글도 나올 수 있다는 것.

어머니 자랑은 다음 차례인 아들의 몫이다.
“제가 쓴 글의 절반은 어머니로부터, 반에 반은 제가 살던 고향 마을로부터 영감을 얻은 거죠. 어머니가 가장 큰 기여를 한 셈이네요(웃음)”.
그에게 동인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소설 ‘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도 어머니를 소재로 쓴 작품이라고 했다.
문단의 중진으로 나이 쉰을 넘긴 그가 지금까지 써온 글만 해도 벌써 수백, 수천 개에 달할 터. 그런데 그 절반이 어머니로부터 나온 것이라니 문득 어릴 적 두 모자(母子)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중학생 이순원은 학교 다니는 것을 몹시도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시간만 꼬박 3시간이 걸리는 데다 불편한 산길을 매일같이 오가야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던 어머니는 어느 날 아침 마지못해 문을 나서던 아들의 가방을 받아들고 앞서 집을 나섰다. 산길에 이르자 어머니는 가방을 다시 아들에게 넘겨주고, 그때부터는 두 발과 지게 작대기를 이용해 아들이 가야 할 산길의 이슬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어머니가 새벽에 먼저 나서서 이슬을 털어내기도 했는데, 어머니는 ‘어미의 정성을 생각해서 딴 길로 새지 말라’고 무언으로 이르고 있었다”고 이 씨는 말했다.
이 씨는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을 글로 옮겼고(그의 첫 산문집 ‘은빛낚시’ 중 ‘어머니의 이슬털이’), 지난 4일 여든의 노모가 ‘장한 어머니상’을 받던 날 어머니와 청중들 앞에서 그 글을 낭송했다.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이 열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서 소설가 이순원이 어머니를 옆에 두고 그의 산문 ‘어머니의 이슬털이’를 낭송하고 있다.
“학교 가는 길도 고단했지만 실은 중학생이 되면서 내가 문명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게 더 고통스러웠죠. 그래서 더 학교 가기가 싫었어. 다른 애들도 나랑 별반 다를 바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
학교 다니는 게 왜 그토록 싫었느냐고 되묻자 이 씨가 당시의 속내를 털어놨다.

어릴 적 그가 살던 마을은 대관령 아래 산골짜기. 그곳은 마을의 최고 연장자인 ‘촌장’이 있고, 그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전기가 들어왔다는 그런 마을이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라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친구들과 비교돼 학교 가기가 더욱 싫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표정이 밝아진 그는 “그 때 그 자연 속에서 살았던 것이 지금의 내겐 정말 큰 재산”이라며, 당시 등잔불 밑에서 책을 읽고, 어머니는 옆에서 바느질을 하셨다던 그림 같은 이야기를 줄지어 쏟아냈다.
그의 얘기를 듣고있자니 소설가 이순원을 만들어낸 어머니, 그리고 그의 고향 마을이 마치 내 어머니, 내 고향의 이야기를 듣는 듯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인터뷰 내내 그가 쏟아낸 이야기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짧은 산문이 되고도 남을 법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들었던 의문, ‘예술가들을 길러낸 어머니에겐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에 대한 대답도 자연스럽게 얻어낼 수 있었다.
끝없이 털어내고 털어내도 아들의 바짓가랑이가 젖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들보다 앞장서 이슬털이를 마다않던 어머니. 어머니의 평범한 행동 속에 깃든 그런 진한 ‘정성’이 아마도 예술가들의 영혼엔 특별함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역시나 그의 마지막 멘트가 가슴을 울린다.
“돌아보니 그때 어머니가 털어주신 이슬로 큰 강 하나가 이뤄져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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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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