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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로 19줄, 세로 19줄로 이뤄진 361칸의 바둑판은 예로부터 ‘우주’라 불린다. 흑돌과 백돌이 만나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펼치는 바둑을 두고 인생에 비유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바둑에서 최고 경지인 9단은 ‘입신(入神)으로 불린다. 바둑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만큼 바둑 9단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금녀의 영역이었던 바둑계에서 ‘여신’이 된 여성이 있다. 바로 프로바둑기사 박지은 기사(27·한국기원)다. 그녀는 2008년 1월 스물다섯의 나이로 한국에서 최초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9단이 됐다.

여성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고 경지인 9단이 된 그녀. 하지만 아직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는 “바둑으로 대한민국을 알리고 싶다”는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바둑 자랑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16년차 프로 바둑기사 박지은입니다. 예전에는 바둑을 고리타분하다고 많이들 표현하셨는데, 요즘엔 두뇌게임이란 단어로 바둑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바둑기사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둑은 초반, 중반, 후반 중 어느 한 부분만 잘 둔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어느 한순간도 집중하지 않으면 다 이겼던 경기도 한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에 끝까지 집중력을 가져야 하는 게임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바둑을 자신의 인생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것처럼 바둑게임도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패하고 말거든요.

바둑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11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바둑을 두시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가졌어요. 부모님께 바둑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바둑교실에 보내주셨죠. 처음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줄곧 바둑학원에 가서 바둑만 뒀어요.

제가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는 편이거든요. 3개월 정도 바둑만 두다 보니깐 바둑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게 평생 내가 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12살 때 프로입단 시험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바둑의 길을 걸었습니다.

14살에 프로 바둑기사가 되셨는데, 힘든 적은 없었나요?
12살 때부터 프로입단을 준비하면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바둑교실에 가 밤늦게까지 준비했지만 계속 떨어졌어요. 학업과 바둑을 동시에 병행하다보니깐 어느 순간 지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 끝에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이후에는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어 평일엔 학원에서 주말에는 연구실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2년간 바둑을 뒀어요. 마침내 14살 때인 1997년 프로바둑 기사가 될 수 있었어요.

남들이 누리는 학창시절이 없다는 게 가끔은 아쉽기도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일찍부터 찾아 노력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됐기 때문에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자기 관리를 해야 했는데, 이런 점은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놀더라도 꼭 연구실에서 놀았고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과 생활하려고 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실력도 느는 것 같더라고요.

 
여성 바둑기사로서 힘들지는 않았나요?
우리나라에 여류기사가 별로 없기도 하고, 실력 면에서도 남성 기사에 밀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둑연구회나 세미나에서 질문을 해도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대회에서도 여류기사와 시합을 벌이는 남성 기사에게 “너는 그냥 올라가겠구나”라며 무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점점 여류기사도 늘고 있으니, 달라지리라 믿어요. 특히 예전에 저와 겨뤘던 루이나이웨이 9단은 바둑계에서 ‘반상의 여제’로 불릴 만큼 남성 못지않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늘고 있으니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와 대우가 달라지겠죠.

제 생각으론 현재 남아있는 차별이나 편견을 없애려면 앞으로 여류입단대회에서 더 많은 여성 기사들을 뽑아야 할 것 같아요. 국내 9단은 총 45명인데, 여성은 단 2명뿐입니다. 그나마 중국의 루이나이웨이 9단이 귀화해서 2명이 된 겁니다. 그만큼 바둑은 여성들에게 문이 좁고 힘듭니다. 여류기사의 수가 늘면 이 같은 어려움이 줄어들 겁니다.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던데 슬럼프는 없었나요?
프로가 된 후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스무 살 때였습니다. 당시 좋은 성적으로 주장이 돼 세계대회에도 나갔습니다. 자신감도 있었는데 마지막에 실수를 한 번 하다 보니, 이후 경기마다 꼬이기 시작했죠. 한번 실수로 지니 계속 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고 자신감도 잃었어요. 경기에서도 많이 졌죠. 우울증도 오고 이유 없이 몸이 아프기도 했죠. 하지만 평생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여기서 멈출 순 없었죠.

그래서 극복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12살 연구생 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초보 연구생들과 똑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바둑을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자 다시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고, 이번에는 세계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죠.

물론 국가대표가 된 뒤에도 패배하고 좌절할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책을 가까이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슬럼프를 점차 빠르게 극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올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후에는 긍정의 힘을 바탕으로 제가 재미있어 하는 바둑을 더 즐겁게 하려고 좋은 것만 생각했고, 복싱, 암벽등반, 요가, 마라톤, 아코디언 등 다양한 세계와 접하며 기분을 전환하자 제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이 있다면요?
시합 때마다 에피소드가 너무 많습니다만, 그중 기억에 남는 시합은 16살 때 조훈현 9단을 이겼을 때입니다. 그때 전 아직 어린 신인이었고 조훈현 9단은 모두의 우상이었죠. 그래서 전 마음을 비우고 배우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경기에 집중했는데 이기고 나니까 정말 기뻤죠.

바둑은 나이도 경력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때 처음 느꼈거든요. ‘누가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바둑을 두느냐’가 승패를 좌우할 때가 많다는 것을 이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인생 목표였던 한국 여성 최초 9단이 되기 위해 치렀던 시합도 기억에 남습니다.

8단이 된지 6개월 만에 치른 초고속 승단시합이기도 했고, 대국을 벌인 상대가 세계 여성 최초 9단인 루이나이웨이 선수였기 때문이죠. 25연승을 한 최강자였던 터라 감회가 남달랐어요. 이 시합에서 이긴 뒤 많은 분들께서 저를 관심 있게 지켜봐주셔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여성 최초 9단이 된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중국에서 시합을 마치고 한국에 왔는데 인터뷰를 하자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사실 많이 놀랐죠. 그렇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처음이라 쑥스럽기도 했고요. 아직 국민스포츠가 아닌 바둑을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고 칭찬을 해주시니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여성신문에서 저를 ‘‘2030 여성 희망리더’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역도선수 장미란, 최초 여성 우주인 이소연, 영화배우 전도연 씨 등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린 20~30대 여성들과 어깨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저에게 2008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한 해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최초 여성 9단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바둑으로 알리는 바둑기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바둑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온라인 게임인 '바투'대회에 참여하는 모습.<사진제공=한국기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바둑을 축구나 야구처럼 한국에서 인기 있는 국민스포츠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는 사실 혼자만의 바둑만을 추구해온 것 같았어요. 그래서 2009년에는 국민들과 바둑을 공유할 수 있도록 외부활동을 했습니다. 바둑대회 심사도 해 보고, 인터넷 바둑해설, 바둑 TV해설도 경험해봤습니다.

처음에는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는데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바둑행사에도 참여해 보니 여유도 생기고 시야를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바둑게임에서도 활약하셨지요?
바둑을 일반인에게 알리자는 차원에서 온라인 바둑게임인 ‘바투’ 게임에 참여했습니다. '바투 여제'란 별명도 얻었어요.

‘바투’는 바둑과 달리 게임이기 때문에 재미있어 하니까 바투를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바둑을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같은 건 아닙니다. ‘바투’는 어디까지나 게임입니다. 실력으로 이기는 바둑과 달리, 히든카드가 있다는 점에서 운이 따라야 이길 수 있답니다.

조용한 곳에서 바둑만 두던 저에게 ‘바투’는 어색하고 생소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직접 만나며 현장감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올해에는 세계대회가 많기 때문에 바둑공부에만 매진할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10시간 이상 바둑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 9단으로서 남성 기사들과도 대등한 승부를 펼치고 싶습니다. 대부분 여성 기사들은 프로가 되면 처음보다 느슨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대회가 남녀부로 나뉘어 있어, 긴장감이 덜한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여성 기사들은 집중력이 좋은 남자 기사들에게 여전히 밀린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여류기사가 남성 기사에게 밀린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거든요. 제가 거둔 40승중 남자 기사를 상대로 이긴 것이 17승이거든요. 저는 여성이 남성에게 밀린다는 말보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평생 해야 할 사명이 바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5년간은 현직에서 ‘바둑’이라는 종목으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국내보다는 국제전에서 맹활약을 보이는 박지은 9단. 실제로 만나본 그녀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성숙하고 패기 넘치는 여성이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을 낮추며 이제껏 대국한 선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녀는 현재 남자 바둑기사들의 기량에 무색할 만큼 공격적이고 정교함을 갖춘 노련한 선수로 통한다. 그녀에게 바둑 최고 경지인 9단은 모든 것을 이룬 마침표가 아닌 더 넓은 곳에 가서 배워나가는 과정이었다. 앞으로 ‘바둑’으로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떨치며 활약하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정책기자 박하나 ladyhana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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