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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UDT의 살아 있는 전설, 청해부대 1진으로 해적 제압, UDT 교관으로 총 4000여 명의 대원 중 2000여 명이 제자, 올해 53세로 9월 전역 전 직업보도교육 예정.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탐색구조작전 중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는 현장으로 굳이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부대에서도 초기 그에게 출동을 ‘명령’하지도, ‘권유’하지도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왜 ‘잠수’에 나서야 했을까.

청해부대 1진 요원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된 고 한주호 준위가 해적 격퇴 작전에 출동하기 직전(위), 이어 출동 후
해적선을 제압한 뒤 함께 출동한 대원에게 차후 지시를 내리고 있다.

부대 관계자는 “솔선수범의 전형인 고인은 교관시절 교육생들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며 “규정과 안전수칙을 어기면 호된 질타가 뒤따랐다”고 말했다. 이것은 고인이 자신보다 후배와 제자를 사랑하는데서 비롯된 애정의 징표였다.

고인은 특수전여단(UDT/SEAL)의 현장 지휘관을 보좌하고, 대원들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주기 위해 지난달 28일 오후 6시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부대 관계관은 이번 작전의 핵심 참모 역할을 할 전문가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이 높은 고 한 준위의 힘이 필요함을 느꼈다. 어려운 상황을 맞은 대원들에게 잠수와 작전에 필요한 기술적 조언이 뒤따라야 했다.

최초, 그는 잠수요원으로 투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인은 현장을 둘러보고 1분 1초가 급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구조작전에 자원해 뛰어들었다. 누가 말릴 겨를도 없었다. 누구보다 바다의 무서움을 잘 아는 고인이 수심 수십m 아래 갇혀 있을 후배 전우들을 생각하면 해상에 머무를 수 없었던 것. 거센 조류와 시계 제로의 최악의 상황은 고인의 몸을 지탱하던 기운을 조금씩 빼앗았다.

백령도에서 구조작전을 벌였던 교육훈련대장 김근한(사후84기·특전39차) 소령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6시부터 1진 선발 대원들은 전날에 이어 사고 해역 일대에서 구조작전에 착수했다. 오후 2시쯤 대원들은 핸드소나와 수심측정기를 통해 최초 소실지역에서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흔적을 쫓았다. 핸드소나에서 철소리가 들리는 순간, 수심 30m로 유지되던 것이 갑자기 20여m로 낮아졌다. 함체로 추측되는 물체를 발견한 것.

당시 조류가 강해 임시 부표를 설치하고 핸드GPS로 좌표를 찍었다. 이때가 해질 무렵인 오후 6시쯤. 무려 12시간의 수색작전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찾아 낸 선체가 파도에 휩쓸려 어디론가 이동한다면 구조작업이 막막해질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 결국 누군가 이런 악조건을 뚫고 잠수해 함체에 부표를 연결하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에게는 재잠수할 여력이 거의 없었다.

때마침 진해에서 헬기로 2진 대원들과 함께 백령도 구조작전 현장에 도착한 고 한 준위가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 백령도에 도착한 지 10분 남짓한 시각, 고 한 준위는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곧바로 2진 대원들을 이끌고 1진 대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고인과 권영대(해사42기·특전38차) 중령 등 16명의 대원은 고무보트 4척에 나눠 타고 오후 6시 30분쯤 부표 재설치작업에 들어갔다. 차가운 수온,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최악의 상황. 밤이 되면서 수온은 더욱 떨어지고 16명 중 누군가는 잠수를 해야 했다. 200파운드짜리 부의 2개, 50m 길이의 로프가 실린 보트가 물결을 타고 일렁이기만 하던 바로 그때, 고인 나섰다. “내가 들어간다.” 고인이 나서자 권 중령부터 만류했다. 권 중령 역시 고인의 제자. 하지만 누구도 고인의 완강한 의지는 꺾지 못했다.

거센 조류와 얼음보다 더 차가운 수온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들 앞에서 고인은 의연한 자세로 잠수복을 입었다. 그리고 임시 부표를 따라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오후 7시 30분, 함수 부분에 부표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주변의 고속정 등에 탑승한 대원들도 갑판에 몰려나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극한 상황을 이겨낸 고인의 얼굴에는 힘겨움보다 제자들을 격려하는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 위, 하늘에는 보름을 앞둔 둥근 달이 훤히 떠올라 있었다.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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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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