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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이 권하는 ‘막걸리 한 잔’ 막걸리에 담긴 한국인의 심성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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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는 한국의 술이다.

똑같은 이름의 술이 다른 나라에는 없다. 소주(燒酒, 燒酒), 청주(淸酒)는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막걸리가 우리말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물론 쌀로 빚은 막걸리와 비슷한 유형의 술이 중국, 일본, 동남아에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들면 판이하게 다르다. 한번 따져보자!

탁주(濁酒)로 분류되는 일본 술이 존재한다. 니고리자케, 도부로쿠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의 탁주처럼 주세법으로 분류된 법률용어는 아니다.

도부로쿠는 침전시켜 여과하면 청주처럼 맑은 술을 얻을 수 있지만, 따로 여과하지 않고 그냥 저어서 마시는 술이다. 한국 동동주처럼 쌀알이 떠있거나, 단맛이 많이 돈다.

이 술은 일본에서 자기 영역이 없이 잡주(雜酒)로 분류된다. 도부로쿠는 일본술 중에서 쌀로 된 가장 소박한 형태의 술인데,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 2002년부터는「구조개혁특구역법」으로 보호하고 권장하고 있다.

니고리자케는 도부로쿠처럼 탁한 술인데, 청주를 얻기 전에 거칠게 여과한 술이다. 니고리자케는 흐린 청주라서 법적으로 청주로 분류되고 있다.

도부로쿠와 니고리자케는 흐린 술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탁주와 비슷하지만, 알코올 도수는 막걸리보다 2배 정도 높은 15% 안팎이다. 막걸리처럼 단숨에 마셨다가는 사래가 들리거나 감전된 듯이 머리가 찡해온다.

보기에 비슷해도 맛은 다른 것이다. 일본인들이 자국의 탁주를 놓아두고 한국의 탁주에 매료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알코올도수와 맛의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본인들이 맛보는 한국탁주 막걸리는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것이다.

탁주가 한자어이긴 하지만, 중국에서는 탁주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인들은 기름에 튀긴 요리가 많기에 독주(毒酒)를 즐긴다. 마오타이는 53%에 이르고 백주는 60%를 넘기기도 하는데 요사이 중국에는 저도주 바람이 불어 38%짜리 소주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서 38%라니 위벽이 두껍지 않고서는 즐기기 어려운 술들이다.

지금 한창 한국의 대형 막걸리양조장들은 중국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막걸리 수출에서 일본시장이 90%를 차지하고, 중국시장은 이제 간신히 잠에서 깨어난 수준이니 중국시장이 잠재력이 크다고 여기는 것이다.

현재는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조선족과 일본인들이 공략대상이지만, 북경과 상해를 중심으로 대도시에 막걸리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 미주(米酒)라는 술이 존재하지만,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막걸리를 중국에 처음 소개하고 알리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바람이 타면 경쟁대상 없이 질주할 수 있다는 보는 것이다.

 
중국은 알코올 50%를 넘나드는 마오타이의 나라, 일본은 알코올 15%가 넘는 청주의 나라, 한국은 알코올 6%짜리를 가지고 있는 막걸리의 나라다. 물론 한국은 막걸리보다 알코올 20%의 소주가, 소주보다는 알코올 4%의 맥주가 더 많이 팔린다.

일본도 소주가 인기를 얻고 있고, 맥주는 전체 술소비량의 70%을 차지할 정도로 맥주가 많이 팔리는 나라다.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세계 최대의 맥주 소비국이고, 중국 칭타오 맥주는 세계 최대의 맥주생산 제조장이다. 하지만 한 나라를 상징할 때, 중국은 마오타이, 일본은 청주로 대표되고, 한국은 점차 막걸리가 그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순하디 순한 술, 막걸리에 우리 심상이 담겨 있다.

이렇게 볼 때 동아시아 3국 중에서 가장 도수가 낮은 술을 즐기는 나라는 알코올 6%짜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다. 이 현상을 두고, 한민족이 중국 민족이나 일본 민족보다 훨씬 순하다는 공식을 끌어낼 수 있다. 술은 기호식품이라 즐겁거나 슬플 때에 마시지만, 누군가를 충동하고 자극할 때도 마신다. 술은 전장터에 나선 장병들에게 필요한 군수품이기도 하다. 말을 탄 병사들은 출병을 앞두고, 말 위에서 뿔처럼 생긴 마상배(馬上杯)로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술은 공동체의식을 키워주고, 서로를 취하게 하여 한 가지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반도에 소주가 들어온 것도 고려시대 몽골 침략기였다. 몽골족은 대륙을 질주하면서, 작게 졸인 양고기뿐 아니라 독한 소주를 가지고 다녔고, 그 술이 한반도에 남아 한국소주의 시원이 되었다. 소주에는 피비린내나는 전쟁의 상흔이 담겨있는 것이다.

일본도 술을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했다. 일본 청주에 순도 높은 알코올 주정이 들어간 것은 1930년대 만주 공략의 전쟁기를 거치면서였다. 술의 양을 늘려 병사들에게 공급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맛에 익숙해져 전쟁이 끝나고도 청주에 주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탁주인 도부로쿠, 술빛이 흐려 막걸리를 닮았다.

그런데 막걸리는 전장터에 가지고 나갈 수가 없다. 어떻게 말통 술을 가져가겠는가? 전장터에는 무거워서도 가져갈 수 없다. 막걸리는 군수품이 아니라 농기구다. 농주라고 부르는 순하디 순한 쌀술을 가진 순한 민족이 한국이다. 막걸리 속에서 우리의 지난날과 우리 민족의 심성을 읽을 수 있다.

허시명은?

허시명은 대한민국 1호 술평론가이자, 술 기행가, 막걸리 감별사다.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이자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품평회 심사위원, 국세청 주류질인증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자료: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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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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