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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달빛 아래 신라 천 년의 숨결을 느낀다 - [공감여행] 경주의 야경 제대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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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로 겨울 나들이를 간다. 봄, 여름, 가을 내내 개구리처럼 오글대던 관광객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시는 한적하기만 하다. 천천히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한 대 빌려 타고 느긋하게 경주를 거닐어보자. 겨울은 경주가 가장 경주다울 때다.

저녁 무렵의 노서동 고분군. 노을과 고분의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밤에 경주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단언컨대, 경주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질 무렵이다. 첨성대 앞에 서 보시라. 건너편으로 보이는 노서동 고분이 경주를 둘러싼 금강산, 남산, 선도산과 어울려 곡선의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 퍼포먼스는 화려하지만 난잡하지 않고, 변화무쌍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한 걸음을 가면 두 개의 능이 겹치고 두 걸음을 가면 세 개의 능이 포개진다. 가까운 능은 진한 곡선을 만들어내고 먼 산은 옅은 곡선을 만들어낸다. 지붕은 그 곡선 사이에서 올망졸망한 곡선을 다시 그린다. 그리고 그 곡선 위로, 신라의 땅 위로 장엄하게 번지는 노을. 옛 신라는 아마도 이보다 더 황홀한 왕국이었을 것이다.

달빛 아래 신라 천 년의 숨결을 느낀다

안압지의 밤 풍경도 분위기 있다. 안압지는 신라의 궁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연못.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보이도록 어느 곳에서도 연못 전체를 조망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연인들은 연못 주위를 걸으며 밤늦도록 데이트를 즐긴다.

신라의 밤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면 남산을 오를 것을 권한다. 매월 보름을 전후해 경주에 가면 기막힌 여행을 해볼 수 있다. 이름하여 남산달빛기행. 경주 남산연구소에서 “이레 좋은 불상남 보여주려고” 만들었다.
 
달빛기행은 보통 오후 7시 또는 7시30분부터 시작된다. 산에 오르기 쉬운 간편한 복장에 음료수와 가벼운 간식거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출발하기 전 김 소장이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한다.

“손전등을 사용하면 앞뒤 사람의 눈이 부시기 때문에 산행에 방해가 됩니다.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산행할 수 있습니다.”

남산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고 산길에 오른다. 윤은골을 따라 올라가 마애삼존불과 상실절터를 지나 해목령에 오른 후 금오정과 늠비봉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 약 4시간가량이 소요되는데, 아이도 오를 수 있을 만큼 쉽다.

남산에서 펼쳐지는 달빛기행

포석정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본격적인 달빛기행이 시작된다. 길은 자동차 한 대가 충분히 지나가고도 남을 만큼 넓다. 여기저기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린다.

“달빛기행 처음이세요?” “네. 우연히 참가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네요.” “막걸리 한 잔 하면 좋겠다.” “그럴 줄 알고 배낭에 한 병 넣어 왔어요. 나중에 경치 좋은 데서 나눠 마십시다.”

이렇게 걷기를 30여 분. 문득 김 소장이 “잘 생긴 부처님 한 분”을 뵙고 가잔다. 윤은골 마애삼체불이다. 비탈길을 올라가자 평범한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김 소장이 바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설명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삼존불은 본존불과 좌우 두 협시 보살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 세 부처는 기역 모양의 바위벽 남향면에 두 분 계시고 서향면에 한 분 계시는 것이 특이하죠.”

그러면서 “잘 보세요” 하더니만 촛불을 켠다. 촛불이 부처님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아!’하는 탄성이 터진다. 달밤, 돌에 새겨진 부처님 앞에 서면 그 기분, 단순한 관광이나 등산과는 조금 다르다.

상실절터와 해목령을 지나면 늠비봉 오층석탑에 다다른다. 석탑 아래로 환하게 불을 밝힌 경주 시가지가 펼쳐진다. 먼 서쪽으로는 배리평야와 선도산이 굽어 보이고, 북쪽으로는 해목령을 마주하며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 펼쳐진다.

“이 탑의 위대함은 기단에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하늘에 닿기 위해 40~50년 걸려 첨탑을 세웠어요. 하지만 신라인들은 산을 기단으로 삼아 탑을 세웠죠.” 누군가는 탑에 기대 경주 시내를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탑 주위를 빙빙 맴돈다. 또 누군가는 탑 위에 걸린 달
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추령재를 넘어 감은사지를 지나 감포 바다에 닿는 길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게 한다”고 했던 그 길이다. 여정은 보문관광단지를 지나면서 시작되는데 여정의 대강은 이러하다.

보문호를 지난 길은 뱀처럼 똬리를 틀며 토함산 북동쪽 산자락을 타고 오른다. 눈 덮인 토함산이 예쁘다. 오가는 차도 드물다. 여기서부터 한적한 드라이브가 시작된다. 잘 닦인 아스팔트길을 따라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다 보면 눈앞에 너른 호수가 등장한다. 경주 일대 상수원인 덕동호다. 1975년 덕동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덕동호를 지나면서 길은 한층 가팔라지고 굴곡이 심해진다. 추령재로 오르는 길이다. 예전에는 경주사람들이 감포에 가기 위해서는 추령재를 힘겹게 넘어야 했지만 지금은 추령터널이 뚫리면서 한결 편해졌다. 터널을 지나는 대신 옛길을 따라 추령재를 넘는 길을 택한다.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토함산 자락의 전망이 그만이다. 추령재를 넘어 들판을 가로질러 양북면 어일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929번 지방도.

이 길을 따라가면 감은사지를 지나 문무대왕 수중릉으로 갈 수 있다. 929번 지방도 오른쪽에는 대종천이 흐른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의 여느 하천이나 다를 바 없다. 대종천을 따라 10여 분 달리면 길 저편에 우뚝한 두 기의 탑이 보인다. 감은사 삼층석탑이다. 추령재~대왕암 드라이브 구간의 하이라이트다.

감은사지의 위엄과 만나다

감은사 삼층석탑은 웅장하다. 높이는 13.4미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라탑뿐 아니라 삼층석탑 중에서도 가장 크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위압감. 탑에 서린 동해바다만큼이나 시퍼렇고 날카로운 전의.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언이 가슴속에 전해지는 듯하다.

감은사탑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다가오는 탑의 영상은 어느 조각품보다 완벽하고 장엄하다. 학자 중에는 감은사지를 ‘경주 답사여행의 클라이맥스’라고 강조하는 사람도 많다.
 
자, 이제 바다로 간다. 감은사지에서 5분 거리에 대왕암이 있다. 대왕암은 문무왕이 묻힌 곳. 문무왕은 죽어서도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고 동해바다에 묻혔다.

봉길리 해수욕장에서 감포 쪽으로 가면 이견대다. 이견대란 용을 본 곳이라는 뜻. 이곳에서 신문왕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다. 세상의 파도를 없애고 편안을 얻는 피리다. 용이 된 문무왕이 건네준 보물이다.

감포항은 이견대에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멋진 바다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감포 어시장에는 오징어와 멸치, 말린 생선, 미역, 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포구 한편에서는 과메기와 오징어가 해풍에 말라간다. 방파제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눈이 아릴 정도로 하얀 등대가 서 있다. 방파제에는 바다낚시에 세월 가는 줄 모르는 강태공들이 잔뜩 몰려 있다.
 
글·사진: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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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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