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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 새내기 충남대학교 배한은 - 입시지옥과 대학생이 된 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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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일단 그동안 부모님의 보살핌과 이제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어 권리가 많아짐과 동시에 그만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많아졌다. ......

 
대학 새내기로서의 생활.

입시지옥과 대학생이 된 나를 꿈꾸며.

이 세상 대부분의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초, 중 ,고 12년이라는 세월의 교육과정을 모두 마친 후 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항상 성인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내가 성인되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고민의 끝에서 나는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는 정의로운 검사가 될 결심을 했고 대학에 들어 갈 과를 법학과에 가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2009년도부터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실시되어 조금 좋다고 하는 대학은 모두 로스쿨제도를 실시하여 법학과 자체가 없어졌다.

법학과를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동안 가치관의 혼란이 오기는 했지만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일이 꼭 검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사회정의 역시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생각과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시골학교에서 특별히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3년 내내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여 충남대학교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저는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09학번 배한은 입니다.”

수능성적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아 지원한 학교마다 떨어질 때 마다 재수를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자 나는 ‘내가 부족해서 남들 12년 할 일을 나는 13년이나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나의 대해서 실망한 커져갔고 절망에 늪에 빠져만 갔다.

내가 그렇게 나에 대해서 실망하고 절망에 늪에 빠지게 되었을 무렵 마침내 나는 충남대학교에 합격하였다.

충남대는 처음에 합격할거라는 생각은 물론 과연 내가 합격해도 충남대를 갈지도 모르는 채 합격, 불합격을 떠나서 그야말로 그냥한번 원서를 내본 곳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남대에 합격했을 때의 내 기분을 하늘을 날아 갈 것 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12년 동안 내가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과 더 이상 내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뻤다. 얼마 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나는 동기들과 선배님들에게 큰소리로 나를 소개했다.

“이번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09학번 배한은입니다.”


선배, 동기, 알바, 공부, 수업 그리고 술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일단 그동안 부모님의 보살핌과 이제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어 권리가 많아짐과 동시에 그만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많아졌다. 이런 저런 생각과 부담으로 대학에 적응하게 힘들었던 나에게 과의 선배님들과 동기들은 큰 위안이 되었다.

선배님들은 내가 과에 잘 적응 못하는 것을 알고 따로 불러서 밥을 사주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고, 동기들 역시 특별한 날 저녁이면 나를 불러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었다.

솔직히 처음 대학에 들어간 3월은 동기들과 선배님들과의 크고 작은 약속으로 처음 대학에 들어가면 하려고 했던 계획들을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선후배간의 의리와 동기들과 친분을 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4월이 되면서 언제까지나 친분과 의리만을 쌓을 수는 없었다. 선배와 동기들과 놀면서 그동안 수업에 최선을 다해서 하지 못했고 그만큼 밥값이나 술값으로 과다한 지출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4월부터는 열심히 수업에 들어갔고 입학 전에 세웠던 토익과 한문공부 하면서도 반면에 동기나 선배들과의 중요한 모임에는 꼭 참가를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바빠졌고, 더욱이 중간고사가 다가오면서 나는 더 바빠졌다. 중간고사를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시험을 나름대로 잘 치고 나니 대학을 꽃이라고 불리는 축제가 다가왔다.

우리 과는 이번에 축제기간 동안 주점(酒店)을 하기로 했고 축제기간동안 많은 가수들이 학교에서 공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점(酒店)에서 일을 했다.

처음에는 ‘대학 축제동안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축제가 끝난 후 주점(酒店)을 같이 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축제기간동안 같이 일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수들 공연 보면서 축제를 즐긴 것 보다 선배, 동기들과 같이 일 한 것이 더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축제도 끝나고 기말고사가 다가 왔을 무렵 나 와 동기들은 서로 도서관자리를 서로 맡아 주면서 공부를 했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한 학기를 마치면서 마지막 술자리에서 서로 고생했다고 위로하며 다음 학기에 만나자고 하였다.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과 토익과 한문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위해 대전에 남기로 했다.

어느 날은 통장을 확인해 봤는데 돈이 얼마 남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많은 곳에 전화를 했지만 결국 야간 택배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물류센터에서 택배 물을 나르는 일이었다.

택배아르바이트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기본 20kg되는 물건을 날랐고, 쌓았다. 시계가 없어서 몇 시 인지도 모르 채 문득 하늘을 보았는데 하늘이 파래지는 것을 보고 ‘드디어 일이 끝났다.’ 라고 생각했다.

일이 끝난 후 일당 4만원을 받으며 과연 이 돈을 내가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 얼굴이 생각나면서 부모님에 2가지가 고마웠다.

첫 번째는 부모님이 택배 일을 하지 않는 것에 고마웠고 두 번째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공부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고마웠다. 하여튼 그 날 택배아르바이트는 사회에 나가 보지 못한 내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다.


1학년 1학기의 반성과 이후의 삶

1학년 1학기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해 보았다. 도서관에서 밤새도록 공부를 해보기도 했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경험하기도 했고, 유명한 국회의원이나 강사들의 강연을 들으며 교양을 쌓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도서관이 아니면 읽기 힘든 책들을 읽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스스로 나의 대학 새내기의 한 학기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을 줄 수 있다. 1점이 부족한 이유는 생각보다 학점이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방학이 끝나면 2학기가 다가온다. 2학기에는 1학기 때 보다 학과공부든 토익이든 좀 더 열심히 공부 할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장차 공무원 이든, 정치인이든, 법조인이 되어, 처음 대학에 입학하려했던 나의 뜨거운 가슴 속에 있던 빛나는 꿈,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이 할 것이다.

그것이 빈 머리,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그 힘든 12년 동안의 입시 지옥을 탈출한 의무이자 유일한 이유니까.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09학번  배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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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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