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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청소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

베이스캠프 주변에 꼭꼭 숨겨진 쓰레기, 때론 8000m 높이까지 올라가 흉물스럽게 방치된 음식 캔, 텐트, 산소통을 지고 내려온다. 그 주인공은 산악인 한왕용 대장이다. 한 대장은 2003년 브로드피크를 등정하며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14좌를 모두 올랐다. 국내에서는 엄홍길·박영석 대장에 이어 3번째, 세계에서는 11번째로 세운 대기록이다.

한 대장은 14좌를 모두 오른 후, 다시는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엄홍길·박영석 대장이 새로운 기록을 위해 히말라야와 극지로 발을 넓히는 것에 비하면 한 대장의 선언은 파격 중의 파격이다.

하지만 한 대장은 새로운 기록 대신에 청소를 선택했다. 히말라야에 내가,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줍겠다는 갸륵한 생각이다. 칸첸중가 '클린 마운틴' 원정 준비로 바쁜 한왕용 대장을 만나 산과 청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오르셨습니다. 그 이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직장 생활 열심히 하면서 가정에 충실했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노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한 대장은 ‘밀레 아웃도어’에서 근무하고, 9살 대성이와 7살 다산이의 아버지다. 그동안 히말라야 원정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소홀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2003년부터 시작한 ‘클린 마운틴’ 원정대는 그동안 에베레스트, K2, 마나슬루,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낭가파르바트 등에서 엄청난 쓰레기를 수거했습니다. 원정대원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비를 내고 자청해서 합류했습니다. 그분들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많은 쓰레기에 분노했습니다. 부끄럽게도 한국인이 버린 쓰레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클린 마운틴’ 운동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한마디로 히말라야 청소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오른 히말라야 8000m 14좌 봉우리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입니다. 세계의 유산인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후손에게 본연의 모습 그대로 전해주자는 것입니다. 산을 통해 저는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산에 좀 갚아주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003년입니다. 당시 브로드피크 등반 중이었는데, 기상 여건이 악화돼 휴식하던 중 일본 원정대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때 반찬으로 나온 것이 깻잎, 마늘장아찌 통조림입니다. 처음에는 ‘일본 친구들이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 원정대가 버리고 간 것을 재활용한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생각하게 된 것이 청소 등반입니다. 특히 한국 원정대는 독특한 식습관 때문에 많은 음식을 가져가고 쓰레기도 많이 발생합니다. 제가 버린 쓰레기도 많을 것입니다. 내가, 우리가 히말라야에 버린 쓰레기를 제 손으로 치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린 마운틴’ 운동은 2003년부터 시작했고, 8000m급 14좌 봉우리 중에서 칸첸중가, 시샤팡마, 초오유 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산다는 것 또는 청렴이나 부정부패 등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정직은 산악계에서도 필수 덕목입니다. 정상에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올라갔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끼리끼리 쉬쉬 하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흉하게 망가집니까.

거짓말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지금의 풍토와 연관이 있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그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상에 올라갔다고 거짓말하고 그것이 밝혀지면 ‘나중에 올라가면 되지 뭐!’하고 발을 뺍니다.

제가 청소를 하는 것도 일종의 책임을 지는 행위입니다. 나중에 네팔에서 히말라야에 쌓인 쓰레기는 버린 나라에서 다 가져가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나라 쓰레기가 가장 많은 것은 세계 산악인들이 알고 있습니다. 국제적 망신은 물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권익위에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산을 청소하는 것처럼 권익위가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정직하고 책임지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청렴한 인물이나 존경하는 산악인은 누구입니까?

일본의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입니다. 그는 세계 최초 5대륙 정상 등정, 남극 3,000㎞·북극 170,000㎞ 개썰매 단독 횡단, 6,000㎞ 아마존강 탐사 등으로 세계 탐험사의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제가 관심 있게 본 것은 이러한 기록보다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하는 그의 자세였습니다. 그는 일본의 공사판, 캘리포니아의 포도농장, 알프스의 스키장 잡부로 전전하며 원정에 필요한 돈을 모았습니다.

저도 되도록 원정에 필요한 돈을 스스로 장만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막상 등반을 할 때는 속이 편했어요. 그래서 결과가 좋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다 싶으면 내려오면 되고, 등반을 좀 더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클린 마운틴’ 행사가 올가을 칸첸중가, 내년에 시샤팡마와 초오유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초오유는 제가 처음 오른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로 가장 많은 쓰레기가 있는 곳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좋은 일로 만나고 싶습니다.

한왕용은 누구?
1966년 전주 출생. 대학 시절, 어영부영 선배들한테 이끌려 산악부에 가입하면서 산을 만났다.
그렇게 만난 산은 그의 인생 전부가 되었다. 1994년 초오유 등정을 시작으로 2003년 브로드피크를 오르면서 10년 만에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를 모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히말라야의 휴머니스트’가 그의 애칭이다.

10여 년의 원정 동안 불의의 사고나 무리한 강행군으로 사망한 대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이는 한왕용 대장의 ‘등정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등반철학 덕분에 가능할 수 있는 대기록이다. 한왕용의 희생정신은 널리 정평이 나있다. 2000년 7월 K2 등반 중 선배 유한규 씨가 심한 고소 증세로 고통스러워하자 자신의 산소통을 넘겨 주고 무산소로 등정했다.

이후 한 대장은 뇌혈관이 막히는 마비 증세로 4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또한 1995년 에베레스트 등정 때는 뒤늦게 정상에 오른 고려대 원정대 대원이 내려오지 않자 해발 8700m에서 5시간여 동안 기다려 기진맥진한 그를 살려 내기도 했다. 2003년부터 ‘클린 마운틴’ 운동을 전개하며 8000m급 14좌 봉우리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한 대장은 2004년 대한민국 산악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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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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