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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상도 주고 벌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적여건에 상관없이 스스로 삶의 목적을 발견해 나가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소설가 김훈에 조용히 열광하는 중년남성들

친구들과 함께 휴가차 주말여행을 다녀왔다. 이제 ‘완벽한 중년’에 접어든 40대 중반의 남성들 이야기는 늘 정치나 사업문제였다가 어느덧 인생문제로 바뀌어 버렸다. 많은 친구들이 중년기로 접어들면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의문을 갖게 된다.

“이게 정말 내가 꿈꾸던 인생이었단 말인가?” 그냥 갱년기 증세쯤이라고 넘기기엔 그런 질문은 참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사실 아동기는 힘들었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때여서, 그리고 청소년기는 혼란스러웠지만 미래의 꿈을 키우면서 그렇게 지내왔다.

그런 고비만 넘기면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믿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니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좋은날 온다고 말이다. 그래서 고생한 끝에 중년이 되면 좋은 세상이 펼쳐질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날 목욕탕에 가면 배불뚝이 자신과 맞닥뜨리고 흰머리에 노안에, 저린 수족을 갖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최근 플로우로 유명한 미하이 교수가 한국을 방한했다. 그는 현대의 삶에서 느끼는 불안과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가 제공하는 당근과 채찍의 달콤한 매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상도 주고 벌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적여건에 상관없이 스스로 삶의 목적을 발견해 나가는 능력을 개발해야 하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이런 면에서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과 우륵은 중년에겐 한없이 부러운 존재들이다. 외적인 여건과 상관없이 스스로가 설정한 목적을 위해 능력을 개발하고 장애에 대응해 가는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 북캉스 시즌에 중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책도 이들 김훈의 책들이라고 한다. 이순신과 우륵 같은 인간형이 중년층의 지향형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들이 부러워하고 또 닮고 싶은 모델이기도 하나 또한 범접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김훈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순신이라는 사내가 감당한 것은 그야말로 절망만이 가득 찬 현실이더군요. 전쟁이 났는데 임금은 의주로 도망갔고 적은 이순신보다 수백배 강하고 부하놈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뒤에서 도망을 가고 임금은 온갖 트집을 잡아서 이순신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 절망의 시대에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 헛된 희망을 꿈이라 말하지 않고 그 절망의 시대를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난중일기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에 입각하는 리얼리스트 정신이었다.

오직 바다에서 벌어지는 사실에만 입각하여, 사색당쟁속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둔다. 그것은 과학과 사실의 승리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순신은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백 번쯤 군법을 집행한다. 군법을 집행했다는 것은 자기 부하를 처형했다는 것이다. 자비와 무자비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난중일기에 “오늘 어떤 녀석이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라고 쓴다. 목을 베었다는 말이다. 그 머리를 베어서 장대에 끼워서 성 앞에 걸었다고 쓴다.

김훈은 또 우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륵은 대가야에서 지위가 매우 높았어요. 궁중악사였다고 하니까. 예술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벼슬에 도달한 것이죠. 그런데 신라가 자기 조국 대가야를 쳐들어오니까 우륵은 악기를 들고 조국을 배반해버렸습니다. 그 작은 부족국가를 배반하고 신라에 투항을 했지요. 진흥왕의 포로가 되어서 진흥왕을 위해 음악을 연주합니다.

나는 우륵이 조국을 배반하는 대목이 아주 맘에 들었어요. 악기를 들고 조국을 배반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륵의 악기는 그 당시 가야금이라는 이름이 없고 그냥 금이었는데, 그 악기에 자기 조국의 이름을 붙여서 가야금이라는 이름으로 천년만년 전한 것이죠. 우륵은 사실 진흥왕을 이긴 사람일 수도 있어요.

대가야의 악기로 신라의 음악을 완전히 평정해 버렸으니까. 그 이름이 가야금으로, 자기가 배반해버린 조국의 이름을 거기다 붙여 천년만년 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승부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바다의 기별, 165)

온갖 왜곡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일하는 다수의 가장들. 집안의 가장이 바깥에서 굴욕을 당하더라도, 그것과는 관련 없이 자신의 본질이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후대가 ‘역사적으로 승리’하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마음들이 그 속에 배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흡사 주위의 환경들이 수없이 자신을 채근하고 교묘하게 밀쳐내려고 해도 스스로는 어떻게 해서든 버텨서 위기를 견뎌보려는 중년 가장의 인내를 반영하는 몸짓일 것이다

. 가족들의 반가운 대화소리를 보존하는 것은 외부의 침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리를 그것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우륵의 모습과 흡사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간질과 불신의 늪 속에서 그것과 독립하여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은 흡사 사색당쟁 속에서도 기술과 전술을 익히고 쌓아가는 과학적 전략가인 이순신과 닮았다.

직장과 가정에서 가지는 책임감을 수행하기 위한 냉철함과 그런 냉철한 몰입을 통해 삶을 이끌어 가야 하는 절박감까지 어우러져 한국 중년남성의 코드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이천년전 우륵과 사백년전 이순신의 경지와 통한 것이다. 오랫동안 소설책과 어울리지 않던 중년남성들이 이제 지하철에서도 공원에서도 김훈의 소설책에 빠져들고 술판의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남자들의 중년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제 알게 되었다.

방한했던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행복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줄 알았던 청중들에게 알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고 한국을 유유히 떠났지만, 우리에겐 우리 코드를 이해하고 우리의 몰입을 한층 고양시키는 김훈이란 작가가 플로우를 안겨주는 더 명확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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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 오코노미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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